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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74
제목 고통의 유통기한
글쓴이 은행나무 첨부파일
작성일 2012-04-09 조회수 1954
#풍경1: 자식의 주검을 안고서 여인이 절규했습니다. “부처님, 이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붓다는 여인에게 말했죠.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찾아서 겨자씨 세 개를 얻어오너라. 그럼 네 소원이 이뤄질 것이다.” 여인은 마을을 다 뒤졌으나 결국 그런 집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이치를 깨닫게 됐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죠. 그러나 ’나의 일‘로 닥칠 때는 우리도 그 이치를 못 보게 됩니다. 여인은 결국 자식의 죽음을 수용했습니다.
  #풍경2: 몇 달 전 소설가 한강씨 인터뷰에서 기자와의 문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간의 고통에 유통기한이 있을까요.” 그러자 한씨가 “음, 어떤 고통은 유통기한이 없지 않을까요?” 기자는 “고통은 시간과 더불어 사라지므로 유통기한이 있다”고 주장했고, 소설가는 “고통의 소멸이 회복이라면, 완전한 회복이 가당키나 한 것일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며 숱한 사람이 던졌을 물음입니다. “인간의 고통에 유통기한이 있는가” 실은 ‘풍경1’이 이미 답을 했습니다. 만약 여인이 붓다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자식 잃은 고통은 영원히 지속됐을 겁니다. 여인은 이렇게 말하겠죠. “자식 잃은 고통은 유통기한이 없다. 영원히 지속된다. 그러니 고통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계절은 가고 옵니다. 자연의 이치죠. 왜 그럴까요. 여름의 속성, 가을의 속성이 본래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감정도 계절과 같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감정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겁니다. 그게 자연의 이치죠. 왜 그럴까요. 감정의 속성도 본래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엊그제 고통과 어제의 고통이 다르고, 어제의 고통과 오늘의 고통이 다른 겁니다. 그렇게 고통은 사그라지는 거죠.
  때론 사라지지 않는 고통도 있습니다. 내 마음이 고통을 놓아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고통의 대상’을 놓고 싶지 않은 겁니다. 가을이 가고, 이미 겨울이 왔는데도 내 마음은 ‘낙엽 지는 가을’을 계속 움켜쥐고 있는 거죠. 그 사람에겐 여전히 가을이 계속됩니다. 그러니 ‘1년짜리 고통’이 있는 게 아닙니다. ‘1년짜리 고집’이 있을 뿐입니다. ‘평생 가는 고통, 영원한 고통’은 없습니다. ‘평생 가는 고집, 영원한 고집’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두 가지 힘이 있습니다. 쥐는 힘과 펴는 힘이죠. 세게 움켜쥐는 것도 내 마음의 힘이고, 활짝 펴는 것도 내 마음의 힘이죠. 그래서 우리는 양쪽 다 쓸 수 있습니다. 둘 다 나의 힘이니까요. 다만 사람들이 ‘펴기’보다 ‘쥐기’에 익숙할 뿐이죠. 그러니 나의 고통에 유통기한이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만큼 더 쥐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바로 집착의 강도입니다.                          

 출처- 중앙일보 

 @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두 가지 힘과 겨루기를 한다. 쥘 것인가 혹은 펼 것인가... 어떤 것을 잡거나 혹은 놓을 것인가... 그리고 언제 할 것인가, 지금 혹은 나중에... 정신분석가이며 현실치료를 창안한 
W. Glasser는 우울한 사람들은 우울을 선택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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