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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20
제목 부부애
글쓴이 이선희 첨부파일
작성일 2004-12-28 조회수 1673
* 부부애의 의미

한자어의 사랑을 뜻하는 애와 슬픔을 뜻하는 애가 같은 한글자로 표기되어서 인지, 부부애라고 할 때 그 안에는 사랑과 슬픔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부부의 사랑과 더불어 배우자에 대한 미움, 적개심, 소외감 등 부정적인 감정들이 담겨져있지만 일생을 함께 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통합되어 결국에는 서로를 믿고 받아들이는 어떤 복합적인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생을 통하여 경험하는 희노애락과 좌절의 과정을 함께 하다보면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위한 실행이 뒤따르게되며, 그 속에서 부부는 상대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상대에 대한 존재를 인정한다. 

* 성가정과 부부애

특별히 대림기간동안 우리들이 부부애를 살펴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성모님과 요셉성인의 부부애를 본받자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 이현실을 잘 살아내고자 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매우 절박한 뜻이 있다.
처녀가 임신을 하면 목숨을 잃게되는 것이 그당시의 풍습이었는데 천사가 수태를 알렸을때 성모님은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또한 임신한 약혼녀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요셉성인의 경우, 무엇이 이분들에게 그런 선택을 하도록 했을까 우리는 궁굼하다.
그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결단이다. 지금 이 상황을 거부한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고, 현실을 떠나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대안을 찾아서 고통을 모면한들 그것은 자신의 길이 아닐꺼라는 분명한 자각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 사랑의 시작과 결혼의 시작(역할, 환경, 성격)

상대에 대한 나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복잡하거나 구차한 현실상황에 얽매이지 않는 연애시절에는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도 이런 감정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여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 안에서 피할 수 없는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부부생활에서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피할 수 없는 부담이란 부부각자의 역할이 주는 일, 환경적(가족간) 조건, 그 때까지 부부각자에게 익숙하게 몸에 밴 습관, 행동, 감정양식, 가치관 - 성격 등으로 이 부분에서 부부들은 다양한 차이를 알게된다.
일상생활이 순조로울 때에는 이런 차이들이 상대에 대한 매력이나 장점들로 여겨지지만 스트레스나 위기에 부대낄 때 부부갈등의 내면에는 이 차이들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으며 이런 갈등이 지속되면 상대가 나에게 맞추어주기를 바라고 맞추어주는 정도를 가지고 상대가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정도라고 판단하는 착각에 빠진다.
반면에 한번만 더 양보를 해주면 평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불안을 느끼며 주도권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부부간의 사랑은 최첨단의 비지니스이다. 이런 이유로 타인에게는 양보를 해도 부부간에는 양보를 하지 못(안)한다.

*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가족주기 그리고 부부애

사람들은 대부분 성인기에 결혼한다. 그런데 결혼 이전의 성장과정(유아-->초기아동-->학령이전-->학령-->청년-->성인 그리고 그 이후의 -->중년-->노년에 이르는 발달단계)에서 당사자에게 익숙하게 형성되었던 태도, 습관, 행동 -성격이 결혼 이후에도 당사자에게는 물론 배우자에게도 영향을 준다. 여기에는 배우자간의 차이가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부부갈등의 시작은 결국 서로의 다름-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달라는 요구에 있다. 그러나 배우자를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자신과의 차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동시에 상대배우자의 과거력(발달사)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므로, 여기에는 자신의 그 무엇을 포기하거나 주거나 하는 등의 직접적인 실행이 뒤따르지 않고서는 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여기에는 과감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구성되어 가족구성원의 발달단계에 따라 과업이 생기고 가족전체가 이에 관련되어 현실수행을 하게되는데 이를 가족주기라고 한다. 가족 중 한 사람이 힘든 과제를 해야할 때 다른 가족이 영향을 받으며 부부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이런 상황 안에서 부부간 갈등이 심각해질 때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피할수 없는 과제수행 때문이라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과제수행에 대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서로 상대방의 탓을 하다가 보면 부부갈등이 심각해지고 회복하기 어려운 역기능이 발생되면, 부부간 본질적인 갈등보다는 그 역기능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혼을 아니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즉 회피하려하기 보다는 어렵더라도 현실과 과감하게 직면하여 정면돌파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 마리아와 요셉같은 용기, 이는 현실위주의 수행을 택할 때에 가능해진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내 짐은 나밖에 질 수 없다. 자신의 짐을 지기도 벅찬데 누가 남의 짐을 대신 지어주겠는가?(부부일지라도)               

* 진정한 부부애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부생활을 잘하려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신뢰 안에는 부부애가 바탕을 이루며 부부애를 유지하는 데에는 항상 신뢰라는 다리가 중간역할을 한다. 부부간의 신뢰란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인 것 같다. 그렇다면 부부간의 신뢰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다. 
@ 믿는다고 한다면 상대배우자의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 언제, 어떻게 믿는다는 것인가?
@@@ 왜 믿는다는 것인가?

@ - 진실/사실 <--> 오해/왜곡
신뢰에 금이 갔다면 그 판단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파악해보아야 한다. 부부들의 고통은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들이 많다. 오해가 오해를 낳고 그 결과가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이어지는 말과 행동이 더 큰 역기능을 가져온다.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사실과 진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 신뢰를 거둘 때에도 사실과 진실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 - 기다림(timing)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부정하면서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조건을 따지고 분석하며 확인을 시도하는데 이런 경우 상대는 자신의 입장에 더 치중하므로 그런 요구를 거부하게 된다 -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배우자가 나를 사랑하니까 나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이지만 사랑한다는 전제를 너에게 먼저 두어야겠다고 한다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주장할 때 부부가 한 평생을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가 의심스러워 보일 때일지라도 기다려준다면, 내가 한 것처럼 그도 나를 기다려줄 것이다. 부부간의 사랑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며, 내가 너보다 더 혹은 네가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보통이다 - 순간마다 50:50 이 될 수는 없다. 
때가 바뀌면 상황도 바뀐다.

@@@ - 현실유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나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므로, 부부관계와 가족관계가 원만할 때에 내가 행복할 수 있으므로 부부는 서로 믿어야 한다. 어느 한 수간 상대가 나를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내면에는 사랑으로 연결된 유대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망서림과 호회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한 순간의 실책에 밀려 신뢰를 버리기 보다는 기다려줌이 필요할 것이다. 부부생활의 모든 것이 불가능해질 때 맨 나중에 버리는 것이 신뢰이다. 그리고 신뢰를 보장하기 어려운 순간일수록 신뢰가 더 필요하다.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사랑에서 적신호가 켜질 때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고 부부생활에서 상대보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먼저 상대를 위해 무엇을 한다는 말이며, 이는 사랑을 저축하는 것이 된다. 
일그러진 어제를 오늘이나 내일 고칠수도 없으며, 지난날은 과거일 뿐 다시 오지 않으므로 과거에 몪여 오늘을 그르치면 나에게 새로운 날은 오지 않는다. 

* 에필로그

성모마리아와 요셉성인의 삶을 살펴보면, 특히 그분들의 결단의 용기를 묵상해보면 부부간에 서로 먼저 양보하라고 다툰다는 것은 얼마나 치졸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남보다 행복해지고 잘 살고자하는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성이 오히려 자신-배우자에게 피해를 주어 불행의 길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히 알아볼 일이다.
배우자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차라리 내가먼저 해보면 어떨까.
혹시 지금 자신이 매우 고통스럽고 심각한 불이익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말씀드린다.
하루도 같은 날은 없다. 고통이 유감스럽고 억울해서라도 오늘을 그르치지 말자. 오늘을 잘 살면 그릇된 어제는 물러간다. 시간이 지난 후에는 유감스럽던 오늘을 "그래도 그 때는 참고 살기를 잘 했어..."라고 추억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결국 삶은 시간의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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