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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447
제목 인생의 재해석 : 직면
글쓴이 은행나무 첨부파일
작성일 2019-08-05 조회수 783

   살다보면 피하고 싶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 일만 없으면 인생이 확 피어날 것 같은 느낍이 옵니다. 자신의 인생 걸림돌이 전부 거기에 박혀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 걸림돌에서 멀어지려고 온 힘을 다해 뛰어 갑니다. 때로는 무조건 뜁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당장 멀어지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희망이나 가능성과 멀어진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최악의 선택은 피해봤자 피할 수 없는 사람이나 상황에서 무리해서 벗어나려고 하는 겁니다. 누구나 해당되는 예를 들면, 가족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와 불화가 있어도 피로 맺어진 가족을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직장도 상당히 그러합니다. 평생직장이라 생각하고 다니다가 어려운 일이 있다고 선뜻 사표를 내기는 힘듭니다. 섣불리 용단을 내렸다가 후회하는 일도 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좋든 싫든 삶의 의미를 해석하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으나, 삶은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삶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찾아내는 의미에 따라 삶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고통받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재해석이란 동일한 상황에 대해 그 해석을 달리, 새롭게 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에 대해 "그래도 어려운 시절에 온갖 수모와 곤경을 참아내며 뼈빠지게 일해서 가족이 굶지는 않게 했다" 고 새로운 해석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곤경을 "내가 이 직장에서 적응력을 키우고, 크게 되기 위한 도전과 성장의 기회" 로 새롭게 그 의미를 찾는다면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도피는 재해석의 방해꾼입니다. 꼭 몸이 떠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마음이 떠나는 것도 도피입니다. 재해석하려면 직면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부딪치는 직면의 직접성은 맛이 피처럼 비릿합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다시 도피합니다. 삶의 유한함 속에서도 도피는 쉽고 직면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 존재감과 정체성을 확인하고 튼튼하게 하려면 직면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재해석은 창의적인 작업입니다. 내가 내 삶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핏덩이로 태어나 부모의 눈치를 보며 성장하며 내 정체성을 키워 왔습니다. 정체성이 숙성되는 혼돈의 청소년기를 거쳐, 이제 어른이 되었다면 내 정체성은 내가 지켜야 합니다.

  

   재해석의 첫 단계는 혼자 있는 공간에서 내 삶을 말로 풀어서 설명해 보는 겁니다. 녹음을 글로 옮겨 반복해서 읽어봅니다. 무슨 내용을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고 무엇을 빼놓았는지를 파악하면 내 삶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됩니다. 내 삶을 스스로 설명한 바가 합리적인지 왜곡되어 있는지, 무리한 설명인지, 심지어 떼쓰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내 인생 설명서 초판이 쓸만한 것인지요? 아니면 급하게 개정판이 나와야 할 건지요? 거기에 나오는 내 생각이 진정 내 생각인지,내가 소망하는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요?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춘 소망을 내 소망이라고 착각하는 건지요?

  

   나는 내 생각, 감정, 행동의 주체가 돼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삶은 예상과 달리 전개되고 마음의 움직임은 예측이 어렵습니다. 내가 나를 대상으로 간주해, (내가 나를)비판하고 부담을 주고 공격해서 고통을 주는 경우도 흔합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험난한 세상의 삶이 더욱 피곤해질 겁니다. 그래서 삶의 재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도피보다는 직면입니다!

 

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동아일보, 201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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