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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337
제목 나를 지키는 일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글쓴이 은행나무 첨부파일
작성일 2016-12-18 조회수 1099

다산 정약용은 자신이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은자"라고 고백한다. 어렸을 때는 출세에 눈이 멀어 과거 공부에 빠졌고, 과거에 급제하자 비단 도포를 입고 미친듯이 온 세상을 누볐는데 이제 유배객 신세가 되어 조상의 묘를 버리고 아득한 바닷가 대나무 숲에 버려진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런저런 욕심과 야망에 이끌려 진정한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과거를 부끄러워하였다.

 

하지만 다산이야말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한 사람임을 알기에 이 부끄러운 고백은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벼슬자리에 오른 시간보다 유배기간이 훨씬 길었던 다산조차 이토록 부끄러워하는데, 나는 과연 '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조그만 엽서 하나를 발견하고 우뚝 멈춰 선 적이 있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주소서)." 이 구절이 그토록 가슴 아팠던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가장 원하는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이토록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사랑이 클수록 실망도 크고 희망이 클수록 절망도 크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함께 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이 고통스럽다.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할수록 성공하지 못할까봐 느끼는 두려움도 커진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들 때문에 나는 나 스스로를 착취하고 궁지에 몰아넣는다. 바로 이런 나로부터 진정한 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지혜가 아닐까.

 

우리가 갈등과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내가 충분히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요새 '싸움의 타깃'을 분명히 하는 생각실험을 하는 중이다.

 

예컨대 누군가와 갈등을 빚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존재 전체'와 싸운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특정한 생각과 싸우는 것이다. 사람을 싫어할 때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싫어할 순 없다. 그 사람 존재 전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의 주장을 싫어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 이다.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갈등 상황에 대처하기가 훨씬 편안해졌다. 무시무시한 것들과도 한번 맞서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은 내 안에 있었다. 타인을 원망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의 안쪽에는 '나는 결코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나르시시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여울(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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