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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83
제목 부부간의 사랑이 반드시 같아야만 행복한 것일까?
글쓴이 은행나무 첨부파일
작성일 2014-04-18 조회수 1897
부부들은 서로 같기를 바란다. 같아야 소통이 되고 같아야 사랑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을 살펴보고 과거를 회상하는 우리는 단순히 세상을 바라보고 과거를 기억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세상을 보고 있고 과거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감각체계가 그 기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빨간장미를 볼 때 눈앞에 보이고 느껴지는 장미의 '빨강'을 느끼는 바로 그 느낌(감각질; 퀄리아) 말이다. 하지만 그 느낌은 나 자신만이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러한 경험을 하겠지만 타인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같을 수는 없다. 
   물론 두개골을 열어 뇌를 관찰한다면 빨간 장미를 바라볼 때 신경세포들의 반응을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신경세포들의 반응은 단지 생화학적 반응에 불과하다. 신경세포들엔 퀄리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내면적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신, 믿음, 선호도, 기억,사랑이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 만약 우리 내면의 세계를 어차피 이 세상 그 누구에게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런 것들을 객관적 차원을 기준으로 언급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의 내면에서 느끼는 경험들 즉 퀄리아는 당사자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장미의 빨강색을 누구는 진한 빨강, 자주색, 누구는 옅은 빨강, 혹은 진분홍, 등등 모두 다르게 경험하고 다르게 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스키너(B F Skinner.1904-1990)는 그래서 인간의 핵심은 행동이라 정의했다. 어차피 우리의 내면적 생각과 정신세계를 객관화 할 수 없다면, 우리가 서로 관찰하고 평가할 수 있는 건 행동뿐이고 따라서, 소통을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행동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행동 그 자체를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개개인의 내면적 세계에 집중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상대의 내면세계(주로 퀄리아의 결과와 관련된)와 외적 표현이 나의 것과 다르다는 점에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파블로프(Pavlov), 왓슨(Watson) 그리고 스키너 같은 '행동주의' 학자는 그래서 다양한 학습 방법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행동을 바꾸어보려 노력했다 특히 스키너는 '조작적 조건화'를 통해 원하는 행동을 매우 효율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빈 상자(추후에 '스키너 상자' 라고 불림)안에 배고픈 동물을 넣는다. 동물이 우연히 실험자가 원하는 행동을 할 경우 먹이를 준다. 처음엔 자신의 행동과 먹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반복된 과정을 통해 동물은 자신의 행동과 먹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 점차 실험자기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동물만이 아니다. 인간 역시 어릴 때부터 진행된 끝없는 조작적 조건화 과정들을 통해 사회가 원하는 성인으로 만들어진다는 게 행동주의자들의 주장이다. 
   한편, 인지심리학과 현대 뇌과학은 행동을 빙산의 일각일뿐이라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행동을 좌우하는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전자와 뇌에서 만들어지는 기억, 선호도, 희망, 증오 그리고 사랑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유기체인 우리들이 사랑과 애정을 매개로 부부가 되어 한 체제를 이루었더라도, 앞에서 제시한 배우자 각자의 퀄리아 마저도 같아질 수는 없다. 어차피 같아질 수 없는 배우자 나름의 개인적 느낌, 삶의 경험, 현실대응 방식에 대해 서로 넓은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행복이 더 확대 된다는 점을 그래서 알 수 있다. 
   나와 너의 퀄리아가 다르다 하더라도 두 사람 모두의 퀄리아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므로, 우리는
상대의 퀄리아(느낌, 감정, 생각, 견해, 태도, 행동 등에 대한)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상대도 나의 퀼리아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사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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