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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30
제목 현대시 100년, 시인이 추천한 시 김수영의 '풀'
글쓴이 은행나무 첨부파일
작성일 2008-01-06 조회수 1946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꺽임이 없는 '둥근곡선'의
자세가 풀의 미덕이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이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이변을 꿈꾸지 않는다. 제 몸이 무너지면 그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 제 몸을 일으켜 세운다.
풀은 솔직한 육필이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새날이 왔다. 새날을 받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제에 있다. 어제의 슬픔과 어제의 이별과 
어제의 질병과 어제의 두려움 속에 있다. 그러나 어제의 곤란은 어제의 곤란으로 끝나야 한다. 
열등은 어제의 열등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이것을 잘 아는 사람은 만명의 적이 와도 무서움이 없으며 물러섬이 없을 것이다. 자존과 자립의
에너지가 우리의 자성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일어서고 있다는 믿음, 넓고 큰 세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당신을
더 사랑하게 되리라는 믿음, 우리는 이 다짐으로 새날을 살아야 한다. 눈사태를 뚫고 
산정을 찾아가는 산악인처럼. (해설. 문태준 시인)

평소에 저는 이 '풀'이라는 시에서 많은 용기를 받았습니다.
그 연약해 보이는 풀이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싯귀는 저에게 많은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벼랑을 모른다는 풀은 참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 줍니다.  

해설 글에서 문태준 시인은  곤란과 열등은 어제의 것으로 끝나야 하며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서 넓고 큰 세상으로 나아가 상대를 더 사랑하며 새날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우리를 일깨워 줍니다. 
풀이라는 아주 작은 식물의 모습에서 이렇게나 끈질기고 박진감 넘치는 의미를 찾아내는
문시인의 정서가 부럽습니다.  

위의 해설 글을 읽으면서 저는 끝없는 가능성과 줄기찬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곤란을 곤란으로 느낀다면 그는 자신의 곤란을 기필코 바꾸게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내심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우리는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며칠전 조선일보 현대시 100년 시인100명이 추천한 시 100편 시리즈 중
김수영시인의 시 '풀'을 보고 저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오래 전 부터 간직했던 시집에서 읽고 좋아했던 싯귀를 다시 읽으면서 예전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꼈고 이 감동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여기에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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